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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균 편  |  신국판  |  384쪽  |  2018. 12. 11.  |  12,000원

합신채플 5

    『합신채플』 제5집을 발간합니다. 지난 2016년 한 해 동안 합신 교수들이 경건회에서 행한 설교들을 중심으로 엮었습니다.

   제4호를 발간하면서 이미 밝혔듯이, 우리는 몇 가지 목적을 가지고 『합신채플』을 발간합니다. 그 목적은 이곳에서 다시 반복해도 좋을 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는, 경건회에서 선포된 메시지들은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강의와는 다른 차원에서 모든 재학생의 경건훈련에 큰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재학생들은 육성으로 현장에서 설교를 듣고, 그 설교를 학교 홈페이지에서 영상으로 다시 듣고, 그리고 2년 후에 발간되는 『합신채플』을 통하여 읽는 설교로 다시 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학생들에게는 『합신채플』이 단순히 한 편의 설교를 읽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됩니다. 둘째는, 합신을 졸업한 동문들을 향한 배려입니다. 그들에게는 모교의 경건회에서 행해진 교수들의 설교를 다시 접하는 것이 마치 고향집의 따뜻한 소식을 듣는 것 같은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으며, 모교와 스승들을 따뜻한 추억으로 다시 떠올리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는 말을 전해 듣곤 합니다. 우리가 『합신채플』을 발간하는 것은 흩어져 있는 동문들에게 그들의 고향집을 떠올려주고 싶은 교수들의 애정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셋째는 『신학정론』과 함께 『합신채플』이 갖는 의미입니다. 개교 초창기부터 합신 교수들의 신학을 대변해온 『신학정론』과 함께 『합신채플』이 합신 설교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중요한 축으로서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 기대가 『합신채플』에 배어 있습니다. 넷째는, 합신 밖에서 합신 교수들의 설교를 궁금해 하며 듣고 싶어 하는 신자들을 위한 배려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더 많은 신자들이 합신의 경건회에서 행해진 교수들의 설교들을 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우리의 바램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책으로서 최소한의 형식적 통일성을 확보할 뿐 아니라, 설교를 읽는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편집자가 일률적으로 대지설교 형식으로 통일하여 편집하였습니다. 설교의 순서는 설교자가 속한 분과를 중심으로 구약학, 신약학, 조직신학, 교회사, 설교학, 기독교교육학, 선교학의 순서로 엮었습니다. 제5집을 발간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협력해주신 여러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쪼록 이번에 발간하는 『합신채플』 제5집이 여러 곳에서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유익을 끼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2018. 11.  
발행인 총장 정창균

윌리엄 퍼킨스, 김영호 옮김  |  254쪽  |  2018. 11. 13.  |  12,000원

일반인을 휘한 요리문답형식의 주기도 해설

    ‘인물이 되려면 인물을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 기도도 그럴까? 퍼킨스와 그의『 주기도 해설』은 적어도 나의 기도생활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퍼킨스의 『주기도 해설』을 번역한 것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나는 합신 3학년(MDiv)이었다. 우리 학교 기숙사에서는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방 기도 모임을 갖고 있다. 나는 피상적으로 삶을 나눈 후에,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기도제목으로, 들어줘도 그만 안 들어줘도 그만이라는 차가운 태도로 기도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퍼킨스의 『주기도 해설』을 조금씩 번역하여 방사람들과 함께 읽고 기도했다.

    결혼한 후에 가정예배시간에 반지하 신혼방에서 아내와 함께 읽고 기도하면서 어색한 한글표현을 일차 수정했다. 그 후 한참이 흘러 독일과 화란에서 학위를 마치고 모교에 돌아와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아내는 네 아이 엄마로 이 글을 다시 읽고, 한글을 재차 삼차 교정했다. 기숙사에서도, 신혼 때에도, 지금도 동일하게 느끼는 것은 퍼킨스의 『주기도 해설』에는 무언가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힘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윌리엄 퍼킨스는 누구이고, 그의 『주기도 해설』은 어떤 책인가?

1. 윌리엄 퍼킨스
유년 및 청년기
   윌리엄 퍼킨스(1558-1602)는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여왕시대(1533 태어남; 재위 1558-1603)에 44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던 학자요 목사요 신앙인이었다. 퍼킨스가 태어났을 때, 잉글랜드는 핸리 8세와 메리 여왕 시대가 저물고, 당시 가장 잘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 하나에 속하는 새 여왕(엘리자베스; 당시 25세) 시대가 열렸다.

   퍼킨스는 워릭셔 벌킹턴 교구 마스턴 재벳(Marston Jabbett in the parish of Bulkington in Warwickshire) 마을의 토머스 퍼킨스와 해나 퍼킨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선천적으로 오른손에 장애가 있었다. 퍼킨스의 부모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다만 당시 발흥하던 신사계급에 속했던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아들을 켐브리지 크리스트 칼리지에 자비생(pensioner)으로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과 회심
   1577년, 당시 19살이었던 청년 퍼킨스는 대학에 들어간다. 그리고 1581년에 문학사 학위(B.A.)를, 3년 후 1584년에 석사 학위(M.A.)를 취득한다.

   퍼킨스 시대에 대학은 르네상스의 영향을 흡수하는 구심점이었다. 따라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연합이 이루어진 것도 바로 대학 안에서였다. 대학의 목적은 단지 종교 의무를 수행하는 성직자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한 신사들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켐브리지도 이런 기관 중 하나였다.

   퍼킨스가 처음으로 켐브리지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켐브리지는 엄격한 스콜라주의적 칼빈주의로 그를 맞았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이 대학의 교육철학과 방법론에 변화가 인다. 프랑스 피터 라무스(Petrus Ramus; Pierre de la Ramée; 1515–1572)의 영향이 잉글랜드에 도착하고, 청교도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켐브리지도 그의 논리학과 교육개혁 정책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캠브리지는 로버트 채더턴(Laurence Chaderton; ca. 1536–1640)과 가브리엘 하비(Gabriel Harvey; ca. 1552/3–1631)의 지도 아래 문법, 수사학, 논리 방법론의 지각변동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철학과 신학적 논의와 명제들은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고 일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단순화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지적 움직임이 처음부터 퍼킨스의 젊은 시절을 매료시킨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 들어간 후 그는 술에 빠져들었다. 또 수학, 흑마술, 점성술 등에 사로잡혔다. 이 세 가지는 모두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퍼킨스는 어떤 문제가 눈에 들어오면, 모든 비밀을 알아내기 전에는 진정할 수 없었다. 훗날 퍼킨스는 자신의 집착을 “우상숭배”(idolatry)라고 불렀다.

   퍼킨스가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또 어떻게 이 집착에서 벗어났는지 아는 사람도 없다. 어쩌면 기형인 오른손 때문에 대학 사회에서 소외를 경험했을 수도 있고, 집에서 벗어난 후 갑자기 주어진 자유를 관리하지 못한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런데 퍼킨스는 기적적으로 이 “사교”(occult)에서 벗어났고, 하나님은 훗날 그의 이 경험을 복음을 위해 사용하셨다.

교수 및 설교자로서 활동
   퍼킨스는 1584년 학위를 마치고 바로 켐브리지의 “교수”가 된다. 당시 켐브리지 교수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강의뿐만 아니라 행정, 설교, 학생지도, 예절 감독 등의 역할을 했다. 이 시기 그는 동시에 켐브리지의 세인트 엔드류스 교회의 설교자로 활동하기 시작하는데, 이때로부터 일평생 계속된다.

   퍼킨스의 활동은 1595년을 기준으로 나뉜다. 이 해에 그랜체스터의 디모디케 크레도케와 결혼하게 되는데, 크리스트 대학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만 교수로서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퍼킨스의 공백은 적지 않았지만, 이때부터 그는 목회자로서 설교와 저술에 전념하는데, 7년 후 신장 결석으로 갑작스런 죽음이 찾아오기까지 지속된다.

   퍼킨스의 활동은 크리스트 칼리지, 세인트 엔드류스 교회, 가정이라는 세 영역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모든 활동에서 퍼킨스는 앎과 실천의 통합을 추구했다. 심지어 예정도 예외가 아니었다. 퍼킨스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은 서로 적대자가 아니라 서로 자신에 대하여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지기와 같았다. 독자의 실천은 앎에 근거하므로, 그는 독자들이 배운 내용을 기억하게 하는데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모든 저작들이 매우 단순한 요리문답 형식을 취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윌리엄 퍼킨스의 『주기도 해설』
저작 동기
   퍼킨스가 『주기도 해설』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주기도 해설』내에 개진된 그의 기도관과 그의 다른 저작에 나타난 기독교의 참 모습에 대한 생각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퍼킨스는 『주기도 해설』을 기도에 대한 정의와 이와 관련된 여섯 가지 질문과 대답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그는 “기도는 어떤 행위인가” 하고 묻고 “기도는 입술노동(lip-labour)이 아니다”고 대답한다. 기도에 “마음의 탄식”(cf. 롬 8:26)이 없고, 내적인 울부짖음과 부르짖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이 없다면(cf. 출 14:15), 그것이 바로 “입술노동”이다. 기도할 때, 성령을 교사로 모시지 않고 마음의 슬픔과 탄식, 갈망으로 기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입술노동”일 뿐이다. 왜냐하면 단어만 나열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단순한 단어들[을 나열하는 것]은 기도를 만들지 못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이것은 퍼킨스 당시 “일반인”의 신앙생활을 배경에 두고 있는 말이다. 퍼킨스는 일반 그리스도인들을 자주 “무지한 사람들”(ignorant people)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오늘날과 같이 부정적인 뜻이 아니다. “비식자층”으로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문제는 이들이 어떻게 신앙생활 및 기도생활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퍼킨스는 자신의 『기독교의 토대』 서문에서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데, 여기서 그들의 생각을 32개 항목으로 요약한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하나님은 십계명과 주기도, 사도신경을 외우는 것으로 섬김을 받으신다(2).
- 종교에서 가장 안전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하는 대로 행하는 것이다(13).
- 어떤 사람이 아침에 기도문들을 기억하여 말할 수 있으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는 그날 이어지는 하루 온 종일 동안 자신을 축복한 것이다(24).
- 어떤 사람이 십계명을 말했다면 그는 기도한 것이다(25).
- 사람은 종교에 대한 지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는 책을 배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28).

   이것은 신자들의 신앙 및 기도생활이 완전히 로마교의 무지와 미신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일반견해”는 신자들을 자기 비위를 맞추는 체계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그러므로 퍼킨스는 개탄한다:

   “이런 것은 당신들의 무지 외에 무엇을 증명하는가? 무지가 지배하는 곳에 죄가 지배하고, 죄가 지배하는 곳에 마귀가 왕노릇하며, 마귀가 왕노릇하는 곳에서 인간은 저주받은 상태에 있다. ... 책 없이 이 모든 것을 암송할 수 있다 하더라도 당신이 그 [기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면, 또한 십계명과 사도신경, 주기도를 내적으로 당신의 마음과 양심에 적용하지 못한다면, 그 암송은 충분한 것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그는 1590-1591년 켐브리지 대학에서 목요일 오후 학생들에게 십계명과 교리문답을 가르쳤다. 아마도 이때 세인트 앤드류스 교회에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주기도 해설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퍼킨스는 설교와 설교자가 불필요하다는 일반인의 인식과 이것을 조장하는 로마교에 깊이 탄식했다. 그는 욥기 33:23을 인용하면서 “일천 중에 한 사람”의 메신저가 없듯이 이 시대에 “진정한 목사”(a true Minister)가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로마교 성직자들이 비난 받아 마땅하다. … 만일 하나님이 보내실 만한 그런 사람이 없거나 몇 안되는 것이 교회에 수치요 불행이라면, 이것은 로마교에 [얼마나 큰] 수치인가! 그들에게는 그렇게 많은 성직자들이 있는데, 그들 중 하나님이 보내실 만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로마교 설교자들이 스스로 복음과 성경에 무지하고, 죄에 민감하지 않으며, 성결하지 않으므로, 신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참 교리를 가르칠 수 없고, 죄를 일깨우고, 거룩한 삶으로 이끌 수 없었을 때, 교회는 그야말로 비참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면 신자들이 설교자들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 설교자는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설교단에 있을 때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처럼 생각한다(9).
- 설교자들이 당신에게 하는 말을 당신은 [이미] 모두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람은 죄인이다. 우리는 이웃을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는다’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그 설교자만큼이나 당신도말할 수 있다(18).

   퍼킨스는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여겼다. 그래서 신자에게 지식이 없고 선한 안내자와 교사가 없는 현실을 애통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나아가 말씀사역자가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복음 사역과 하나님의 교회를 지탱할 일반 수단인 기독교학교(= 신학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주기도”는 이 신자의 앎과 사역자들의 선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퍼킨스에 따르면, 일반인들이 만나야 할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지식은 성경으로부터 온다. 성경은 설교를 통해 선포된다. 그러므로 설교를 통해 성경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일반인이 이 설교의 유익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선 익혀야 할 것들이 있다. 이는 순차적으로 나열하면, 먼저 『기독교의 토대』요, 다음으로 요리문답의 평범한 부분(ordinary parts of the Chatechism), 마지막으로 성경을 강해하는 설교(sermons)이다. 이때 이 요리문답의 평범한 부분 속에 “주기도”가 들어간다.

   퍼킨스는 먼저 여섯 원리들을 숙지하고, 다음으로 이 원리들에 대한 해설을 공부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설교와 요리문답에서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주기도는 사도신경 및 십계명과 더불어 기독교 교리의 기본 골격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퍼킨스의 초기활동과 관련 있다. 그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십계명을 해설했고, 요리문답을 가르쳤으며, 세인트 앤드류스 교회에서 설교했다. 그의 성경 강해, 즉 마태복음 6장(1603), 갈라디아서(1604), 계시록 1-5장(1604), 스바냐(1605), 유다서(1606), 히브리서 11장(1607)이 모두 세인트 앤드류스 교회에서 목회자로 전념한 후기에 나온 반면, 교리해설서들이 주로 전기에 출판된 것 또한 이 사실과 일치한다.

   그러면 십계명 해설은 이 사실에 반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 퍼킨스의 십계명 해설은 한 번도 독립적으로 출판된 적이 없다. 이것은 퍼킨스의『 황금사슬』(1590-1591) 제 9-30장에 들어 있다.

출판 동기와 체계
   퍼킨스는 1595년까지 자신의『 주기도 해설』을 따로 출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런데 1592년과 1593년에 다수의 출판사가 퍼킨스가 모르는 사이 그의 허락 없이 그의 『주기도 해설』을 출판했다. 그가 출판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은 이미 주기도에 대한 해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비동의 출판본에 중대한 결함이 있었는데, 내용 오류뿐만 아니라, 자신이 청중들에게 『주기도 해설』을 할 때, 전달하고자 한 요점들이 잘 드러나지 않은 점이었다.

   그러면 퍼킨스는 어떻게 이 요점들이 드러나도록 하였는가? 비동의 출판본과 비교해 볼 때, 퍼킨스의 1595년 판은 내용을 크게 증보했다. 나아가 1595년 판에 처음으로 “주기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라는 표가 들어온다. 이 표에 따르면, 퍼킨스의 『주기도 해설』에는 다음과 같은 체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말씀”은 주기도를 문자적으로 인용하는 곳으로, 다음에 나오는 그 말씀에 대한 해설이 다루어지는 “의미”의 표제 역할을 한다. 퍼킨스는 이 “의미” 해설 부분에서 문맥이나 앞 간구와의 관계를 먼저 다루고, 이어서 각 간구, 서론 및 마침 문구( “아멘”) 등이 뜻하는 바를 심도 있게 논의한다. 여기서 퍼킨스는 깊은 신학 지식을 쉽게 전달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 부분에서 신자가 기도시 부르는 분이 삼위일체 전체인지, 1위인 아버지인지 논하고, 위격적 연합에 의한 그리스도의 아버지 개념, 양자됨 안에서 신자의 아버지 개념을 설명한다. 또 신자가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때, 얼마나 공동체를 생각해야 하는지 다룬다.

   그러나 퍼킨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 항상 “적용”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다시 “우리가 애통해야 할 비참함”과 “추구하고 갈망해야 할 은혜”로 구성된다. 퍼킨스는 이 부분에서 지적인 적용점, 실천적 적용점 등을 모두 제시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 해설에서 갈망해야 할 은혜는 지적으로는 삼위일체의 연합과 구별을 붙잡는 일이며, 삼위일체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기도자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기 때문이다. 실천적으로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퍼킨스는 기도를 앎과 실천 중 하나가 아니라, 이 둘 모두라고 생각했다.

3. 윌리엄 퍼킨스의 『주기도 해설』과 합신의 「청교도 프로젝트」
   로마교 신자였다가 개신교도가 된 라무스, 방탕하게 살고, 점성술, 흑마술, 수학 등“ 우상숭배”에 빠졌다가 십자가와 복음, 하나님의 은혜를 만난 퍼킨스, 이 두 사람은 나라가 다르고 일했던 분야도 같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동일한 인생목적이 있었다: ‘학문이 학문으로 머물러서는 안되고 일상에 접목되어야 한다. ’

   뿐만 아니라 퍼킨스는 어떻게 해서든 ‘일반인들’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는 죄수든, 대학의 학생이든,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든, 학자들이든 차별없이 찾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로 성경을 선포했다. 퍼킨스의 목표는 그들의 양심을 깨우고, 자기만족에 빠진 상태를 흔들어 ‘현실’을 직시하게 하여 구원을 얻도록 하는 것이었다.

   어디서 이런 열의가 나오는 것인가, 이 영적인 열심의 비밀은 무엇인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주기도 해설』을 비롯한 초기 저작들, 특히 우상숭배를 경고하는 글들을 보면,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일반인들, 곧 “무지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 안에서 과거 자신을 보았을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받은 은혜가 이들에게도 임하기를 바랬다(cf. 딤전 1:16). 이것은 대학자의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넘어 대신앙인의 신자들과 교회에 대한 애정이다.

   퍼킨스의 『주기도 해설』은 이 두 흐름, 즉 신학이 신자의 일상에 적용되어 일상을 부요하게 해야 하고, 일반 신자들이 무지와 자기만족에서 벗어나 복음 안에서 참 신자와 건강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두 생각이 하나를 이루는 거대한 시작점에 있다.

   이 글은 쓰인지 420년이 넘었지만 읽는 독자들의 마음에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일으킨다. 이 책을 읽는 독자마다 저자의 경건과 신앙을 만나길 바란다. 저자가 그렇게 바라던 대로 성경을 알고 실천하는 참 신앙인이요 참 신사, 숙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는 무너진 한국교회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길이 도덕재무장운동이 아니라 삶의 전영역에서 신앙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믿고, 하나님의 말씀과 종교개혁 신학을 일상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청교도들의 역사와 사상을 연구, 토론, 보급, 공유하기 위해「 청교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일은 아빠가 목사이기 때문에 놀림당하는 중학생 자녀,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일이 더욱 창피해져서 식사 전에 감사기도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는 고등학생, 점점 높아지는 교회의 부패지수, 점점 심해지는 교인들의 시민의식과 윤리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에 마음 아파하는 그리스도인들 모두와 함께 울고 고민하고 길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시작된 것이다.

   윌리엄 퍼킨스의 『주기도 해설』은 이러한 청교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이 「청교도 프로젝트」에 포함될 수 있도록 제안해 주신 정창균 총장님과 합신청교도연구센터 소장 안상혁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합신의 「청교도 프로젝트」가 도덕성의 피폐로 모욕당하는 한국교회를 다시 교회답게 세워가는 일에 크게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사무엘 루더포드, 안상혁 옮김  |  548쪽  |  2018. 11. 13.  |  25,000원

생명언약
제1부_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생명 언약 혹은 은혜언약에 관한 논문』(원서명: The Covenant of Life Opened: Or A Treatise of the Covenant of Grace)은 17세기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사무엘 루더포드(1600-1661)가 저술한 언약신학 분야의 대표작입니다. 『생명 언약』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부에서는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을 다루고 제2부에서는 주로 구속 언약 (중보자 언약)을 깊이 있게 논의합니다. 본서는 1655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출판된 『생명 언약』의 제1부를 한국어로 번역한것입니다.

   세기 전환기에 태어난 루더포드는 17세기 영국―스코틀랜드 역사의 격동기를 목사와 신학자와 청교도 혁명의 지도자로 스코틀랜드 교회와 함께 온 몸으로 헤쳐 나갔던 인물입니다. 에딘버러 대학에서 공부한 후에, 앤워스 교구에서 목회를 했으며,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의 신학교수를 역임했습니다. 영국 국교회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1630년경부터 박해를 받았고, 애버딘으로 쫓겨난 이후 스튜어트 왕가의 찰스 1세의 국교도 정책에 저항하는 국민계약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곧이어 영국에서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고 의회에 의해 웨스트민스터 회의가 소집되었을 때, 영국 의회의 초청을 받아 웨스트민스터 회의에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석했습니다. 런던에 머무는 기간 중, 루더포드는 두 권의 중요한 책을 출판합니다. 『법과 국왕』(Lex Rex, 1644)과 『장로회들의 정당한 권리』(The Due Right of Presbyteries, 1644)입니다. 전자가 국가의 민주정치를 위한 초석을 놓은 저서라면, 후자는 교회의 장로교 노회 정치를 성경적으로 변증한 대표작이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 이후 스코틀랜드 언약도와 크롬웰의 독립파 사이에 갈등이 첨예화 되면서, 교회개혁을 향한 루더포드의 기대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기로에 선 스코틀랜드 교회 안에서는 “결의파”와 “항의파” 사이의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루더포드는 생애의 후반기에 “항의파”의 입장을 지지하며 국민계약 운동의 투쟁을 지속했습니다. 이 시기에 출판된 저서가 바로 『생명 언약』입니다. 이후 1660년 왕정복고가 일어났을 때, 그의 『법과 국왕』은 몰수되어 불태워졌으며, 루더포드는 공직에서 박탈되고, 국가반역죄의 혐의를 받아 찰스 2세의 의회로부터 소환 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지병으로 인해 왕의 명령에 응하지 못했던 루더포드는 1661년 3월 30일 자택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숨을 거둡니다.

   이처럼 루더포드는 말 그대로 격랑의 세월을 헤쳐 나가야 했습니다. 지상의 전투하는 교회가 경험하는 온갖 종류의 고난과 실패를 몸소 경험했지만, 오히려 이것은 루더포드의 신앙을 단련하고 그를 은혜의 신학자로 만드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두운 현실의 정황에서 루더포드는 하나님의 은혜 언약과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연구자의 평가처럼 루더포드는 언약신학 안에서 일종의 안식처를 발견한 듯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과 은혜를 특징적으로 강조하는 루더포드의 언약신학은 그의 시대적 정황 속에서 더욱 의미 있게 조명될 수 있습니다.

   『생명 언약』은 루더포드의 생애 후반기에 저술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성경적인 교회개혁의 전망이 점차 어두워지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는 종교개혁 이후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 개혁주의 언약신학이 가장 만개되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한 저작 안에서 루더포드는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 그리고 구속 언약 세 가지를 모두 균형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독자들은, 특히 제2부의 주제인 구속 언약 안에서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이 어떤 방식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또한 어떤 이유에서 구속 언약을 가리켜 은혜 언약의 영원한 기초라고 부르는지를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제1부에서 루더포드는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의 주요 이슈들을 주요 성경구절들을 주해함으로 친절하게 해설해 줍니다. 루더포드의 성경주해 역시 그의 논쟁적 정황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현대의 독자는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본서에서 루더포드가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주요 논적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황주의자들과 예수회 소속 신학자들, 재세례파,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 혹은 항론파, 소키누스주의자들, 율법폐기론자들 그리고 분리주의자들입니다. 특히 교회론 분야에서 같은 신학 전통 안에 있으면서도 그와 의견을 달리했던 영국의 독립파와 뉴잉글랜드의 비분리파 회중주의자들 또한 루더포드가 논박했던 그룹입니다.

   『생명 언약』에서 다루는 행위 언약의 주제들 가운데 몇 가지 눈여겨 볼 이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타락 전 아담의 상태, 행위 언약과 자연 언약의 관계, 행위 언약 안에 약속된 영원한 생명의 성격, 행위 언약과 보상의 관계, 죽음의 위협을 해석하는 관점 등입니다.

   특히 “과연 아담은 처음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되었는가?”의 문제와 “과연 언약 파기에 따른 형벌은 하나님의 본성적 필연성에 따른 것인가?”라는 질문은 하나님의 의지와 작정을 강조하는 루더포드의 특징적 시각을 잘 드러내는 주제들입니다. 물론 균형점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 루더포드는 다소 신학적인 구분을 도입합니다.

   일례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의 지평과 언약 관계 안에 있는 우리의 지평을 구분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언적 영광을 그의 본질적인 영광으로부터 구분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유익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아울러 행위 언약과 은혜의 관련성을 다룰 때, 루더포드는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은혜와 보다 넓은 의미의 은혜를 구분하여 사용한다는 사실은 현대의 머리-클라인 논쟁을 경험한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를 제시합니다.

   『생명 언약』에서 다루는 은혜 언약의 쟁점들 역시 앞서 언급한 논쟁적 정황 속에서 더욱 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로마 교회와 아르미니우스주의를 향해 루더포드는 은혜 언약의 조건인 “믿음”이 결코 칭의의 공로적 원인이 될 수 없으며, 사랑이 소위 “믿음의 형상인”이라고 가르치는 로마 교회의 교리와, 은혜 언약의 조건을 사실상 행위 언약으로 둔갑시키는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반박합니다. 재세례파와 분리주의자들의 도전에 대항하여 루더포드는 유아세례의 성경적 근거를 논증하고, 구약 교회에게 허락된 은혜 언약의 실제를 증명하는 한편, 신약 시대에도 연속성 있게 존재하는 외면 언약과 국가 교회를 변증합니다. 한편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소키누스주의가 가르치는 보편은총, 보편속죄, 예지된 믿음, 그리고 최종적 불신앙의 논의 등을 논박합니다. 루더포드는 율법폐기론의 도전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다루고 있습니다. 신자에게도 선행, 회개, 복음적 순종 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루더포드는 역설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신자들에게서 죄의 감각을 제거해 버린 것이 아님을 중요하게 지적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강조하는 개혁주의 칭의론과 아울러 신자의 성화는 루더포드의 은혜 언약 교리 안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특히 신자들 안에 내주하는 죄와 이를 자각하는 죄에 대한 감각에 관한 깊이 있는 논의는 오늘날의 목회 현장에도 적절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2부에서 루더포드는 은혜 언약 안에 있는 신자의 삶 속에서 마땅히 발견되어야 할 스물네 가지나 되는 “죄죽임”의 열매를 소개합니다. 이는 통찰력 있는 적용의 좋은 실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은혜 언약에 관한 논의에서도 루더포드의 『생명 언약』은 균형점을 상실하지 않습니다. 칭의와 성화 사이의 균형은 물론이고, 은혜 언약의 쌍방성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일례로, 루더포드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은혜 언약의 일방적 은혜가 결코 새 언약의 복음적 순종을 약화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성경적으로 입증하는 데 노력을 기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루더포드는 하나님의 절대적 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그리스도의 만족의 필연성까지 부정해 버리는 잘못을 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께서 자유로운 의지와 절대적인 주권을 따라 그리스도의 만족 없이도 죄를 제거할 수 있다는 주장을 가리켜 “성령을 거스르는 주장”이라고 못 박습니다.

   루더포드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모든 내용들은 은혜 언약의 속성과 은혜로움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로서 루더포드의 통찰력 있는 해석의 틀 안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한 은혜 언약이 행위 언약으로부터 차별화되는 내용을 논의한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두 개의 언약이 영원한 구속 언약 안에서―혹은 중보자 그리스도 안에서―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러한 구속 언약 교리가 목회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살펴보는 것 또한 루더포드의 『생명 언약』을 정독해가는 큰 즐거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라기는 루더포드의 『생명 언약』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성경과 시대를 바라보는 혜안을 얻고 그리고 개혁주의 신학의 풍성함을 배우는 즐거움을 누리기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루더포드의 『생명 언약』이 한글로 번역되어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분들의 크고 작은 도움과 수고가 있었습니다. 먼저 합신 청교도연구센터(Puritan Research Center at Hapdong Theological Seminary)를 개원하고 번역 프로젝트를 시작하신 정창균 총장님께 감사드립니다. 합신 청교도연구센터를 재정적으로 후원해 주시는 유성씨앤에프 주식회사의 황호진 대표이사님과 예수비전교회 도지원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루더포드가 사용한 성경 역본들을 검토해 주신 김영호 교수님과 라틴어 번역과 본문을 세심하게 읽고 교정해 준 오랜 친구 전주대 한병수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미완성된 번역본을 함께 읽으며 수업에 참여했던 합신 Th.M. 역사신학 분과 학우들과, 특히 교정 작업에 참여해준 권슬기 전도사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마침내 읽기 좋은 책으로 만들어 출판해 주신 합신출판부와 북디자이너 김민정 선생님의 노력에도 감사드립니다. 협동 목사의 사역과 합신을 아낌없이 후원해 주시는 조기원 목사님과 송파제일교회 교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부족한 아들을 위해 늘 기도하시는 어머니, 긴 번역의 과정에서 독서실 친구가 되어 준 아들 성진, 늘 웃음을 선사해서 지루함을 덜어 준 성준,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준 사랑하는 아내 정임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비텐베르크에서 도르트까지  |  248쪽  |  2018. 11. 13.  |  12,000원

비텐베르크에서 도르트까지

    길고 풍부한 신학 역사에서 16세기와 17세기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틴 루터가 은혜의 복음을 재발견해서 성경을 새롭게 공부하는 일에 불을 붙이자 교회가 꽃을 피웠습니다. 그리고 회중을 섬기는 일에 중점을 둔 신학이 풍요로워졌습니다. 저는 이 시기를 연구하고 글을 써서, 2016년 11월에 한 주간 동안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학생들과 또 루터와 칼빈의 신학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에게 그 내용을 알려드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이 책의 논문과 강연을 출판하도록 제안해 주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 감사를 드립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는 종교개혁과 개혁파정통주의 역사와 신학에 대한 뛰어난 연구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 시기에 대한 연구가 교회에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확신에서 나왔습니다. 이 책이 목회자뿐만 아니라 더 잘 봉사하고자 더 많이 배우기를 원하는 교회의 모든 분을 북돋아 주기를 기도합니다.

   이 책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도르트 신경 400주년 기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판됩니다. 비텐베르크와 도르트는 직선으로 연결됩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선포하려했던 은혜에 의한 구원을 도르트 총회가 지켜내려 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1618/19년의 도르트 회의가 지키려한 것은 1517년에 선포된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깊이 타락한 죄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부요하고 자유로운 은혜의 메시지입니다.

   이런 점에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가 도르트 신경 400주년을 맞아 그 역사와 신학을 이 시대 교회에 널리 알리고 지속해서 가르치는 일을 학교의 중요한 프로젝트로 결정하여 진행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