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3장의 기록은 성경계시의 모든 내용이 자라 나오는 씨앗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씨앗 속에는 장차 큰 나무에게서 그 모습을 충분하고도 완전하게 드러낼 모든 유전 정보들이 다 담겨있다. 그처럼 창세기의 첫 부분에 성경 전체를 통해 드러날 계시의 모든 내용들이 깊이 내재되어있다. 일례로 요한 계시록 22장이 소개하는바 종말에 나타날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은 창세기 2장에 묘사된 에덴동산의 그것과 유사하다. 이는 성경계시의 전체 내용이 유기적 통일체를 이룬다는 사실에 대한 뚜렷한 증거다. 히브리서가 마지막 날에 성도들이 누리게 될 영원한 안식을 창조의 일곱째 날에 있었던 하나님의 안식과 연결하는 것 역시 같은 증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창세기 1-3장의 기록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전체 성경계시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초석임에 틀림없다.

  창세기 1-3장의 아담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담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고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특별히 아담은 인류의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모형론적 유비관계에 있다. 신약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첫 사람과 마지막 사람이란 구도 속에서 설명한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신약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을 아담 안에서 일어난 인류의 타락에 비추어 설명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이런 말씀들은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구원의 선물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참되게 누릴 수 있기 위해 아담에 대한 성경적 이해의 정립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임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근래에 아담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이 나타나면서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이 도전을 받고 있다. 아담은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부터 인류역사 초기에 존재했던 인간 집단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었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그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의견들은 창조, 타락, 구속에 대하여 교회가 견지해온 전통적 신앙에 근본적인 수정을 요구하기에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도전 앞에서 신자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필자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을 탐구하는 일이 곧 신자들과 교회가 힘써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말씀을 성령의 조명하시는 은혜에 힘입어 바르게 해석하는 길만이 신자들의 신앙과 교회를 진리의 터 위에 굳게 세우는 첩경이다. 이 글은 인류의 첫 조상 아담을 성경이 가르치는 바대로 설명하고자 한 작은 노력의 결과물이다. 성경의 계시는 오류가 없고 완전하나 인간의 해석은 그렇지 못하다. 다만 보잘 것 없는 노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의지할 뿐이다. 부족한 글을 소중한 포켓북 시리즈에 올릴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정창균 총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부디 이 글이 성경적인 아담이해를 정립하는데 사용되는 작은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